포수의 조건

분류없음 2011.09.23 13:27

브렌트 메인은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수비력을 갖춘 포수였다. 특히 그는 투수와의 소통, 투수의 마음을 다스리는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사진은 캔자스시티 시절 다혈질의 호세 리마를 진정시키는 메인의 모습. (사진=LJWORLD.com)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자기 얼굴이 신문과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길 바란다. 하지만 포수에겐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 포수는 경기시간 내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 자리다. 게다가 흉한 보호장비를 잔뜩 매단 채로 혼자서만 관중들을 등지고 쪼그려 앉아 경기를 치른다. 그래서일까. 프로야구 30년 역사 동안 순수하게 포수로서의 능력만으로 각광받은 선수는 극히 드물었다. 올해 열린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도 언론에선 우승팀의 투수만 주목할 뿐 포수에 대해서는 그 흔한 인터뷰 한 줄이 없었다. 

서운하지 않을까. 포수 출신의 한 야구인은 “그게 포수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포수는 자기가 돋보이려고 해선 안되는 자리다. 포수에게 희생정신은 필수다. 가령 중요한 상황에서 얻어맞았을 때 감독이나 코치가 투수를 비난하는 일은 없다. 투수는 심리적으로 아주 예민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항상 대신 매를 맞는 것은 포수들이다.” 한화 신경현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동안 그는 후배 투수들의 컨트롤 난조와 견제능력 부재로 인한 모든 나쁜 결과를 혼자 다 뒤집어 썼다. 사실 팬들의 비난과 달리 현장에서 ‘포수’ 신경현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신경현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투수들에 책임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를 희생하는 포수는 투수들의 신뢰를 받는다. 올해 청룡기에서 우승한 상원고 포수 김종덕은 대회 내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사인과 반대로 온 공도, 주자 없는 상황에서 크게 바운드된 공도 사력을 다해 잡아냈다. 바운드볼 블로킹은 세상에서 화생방훈련 다음으로 고통스러운 일로 꼽힌다. “투수들에게 ‘어떤 공을 던져도 내가 다 막아낼 테니 자신있게 던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상원고 투수들은 김종덕이 낸 사인에 단 한 번도 고개를 젓는 법이 없었다. 서로에 대한 굳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유승안 경찰청 감독은 "포수는 경기장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신뢰를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투수의 신뢰를 얻는 건 포수의 신체능력이나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다. 강견에 컴퓨터 두뇌를 지닌 포수도 투수들에게 불신의 대상인 경우가 적지 않다. SK 김정준 전력분석팀장은 포수를 '벽'에 비유하며, 신뢰를 얻지 못하는 포수는 '공을 튕겨내는 벽과 같다'고 했다. 반면 일본의 다쓰카와 미쓰오처럼 캐칭도 어깨도 타격도 전부 평균 이하지만 “투수가 좋은 공을 던질 수 있게 이끌어내는” 재능만으로 최고 포수가 된 예도 있다. 이런 포수는 투수의 공을 '흡수하는' 벽에 해당한다. 

건국대 차동철 감독은 LG 시절 김정민과 배터리를 이루면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내가 던질 때마다 매번 ‘공이 너무 좋아서 손목이 아프다’고 하며 공을 돌려줬다. 그게 투수에게 자신감을 주고 잠재력을 100% 이끌어냈다.” 해태 시절 장채근도 투수들을 어르고 다독이며 편안하게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결국 좋은 포수는 아마추어 심리학자까지 겸한다. 투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타자의 심리를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경험’이 필수다. 김정준 팀장은 ”사람을 보는 눈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며 포수에게 많은 실전 경험은 물론 인생 경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1년을 돌고 돌아 올해 SK 1군 포수가 된 ‘호프집 사장’ 허웅이 대표적이다. 박경완조차도 주전급으로 성장하는데 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없이는, 좋은 포수도 없다. 

<GQ KOREA> 10월호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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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