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 명단 문제로 야구팬들 사이에 논란이 뜨겁다. 그 가운데서도 에이스 윤석민의 대표팀 합류가 좌절된 KIA와 별명왕 김태균의 출전이 막힌 한화 팬들의 상심이 유독 큰 것 같다. 팬들이 이만큼 마음아파하는데, 탈락한 선수 본인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그 안타까움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거스름돈이 남는다. 아마 내가 응원하는 팀의 '당연히 뽑힐 줄 알았던' 선수가 탈락했더라도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소 정도가 지나친 느낌도 있지만 많은 팬들이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들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는 것도 납득하지 못할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비난과 성토는 있어도 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정작 지적되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건 바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야구 대표팀 구성은 오직 신(神)만이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이해 관계자와 선수들과 8개 구단 팬 모두가 '최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평무사한 야구 대표팀 구성은 김경문이 아닌 어느 감독이 하더라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대표팀 구성을 조범현 감독이 했다면 좀 나았을까? 김성근 감독이 했다면 어떘을까? 선동열이 했다면 비난에서 자유로웠을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는 어느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어도 지금과 마찬가지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리라 본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이런 질문을 해 보자. 국가 대표팀을 구성하는 가장 주된 목적은 무엇일까? [우생순] 같은 영화의 소재가 되자고 대표팀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게다. 국가 대표팀을 구성하는 주목적은 바로 '좋은 성적'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건,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건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이 대표팀의 존재 이유다. 따라서 대표팀은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선수들 역시 자신의 종목 국가대표로 뽑히기 위해 전력을 다해 애쓰며, 일단 선발되면 국대 경기에서 그야말로 '허리가 부러져라'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
그럼 선수들은 왜 국가대표로 뛰기를 원하는가? 이건 개인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게다. 정말로 불타는 애국심에서 나라를 위해 이 한몸 으스러지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수도 있을 것이고, 국가대표가 스포츠인에게 최고의 영예라는 사실을 알기에 태극마크를 달려는 이도 존재할 것이다. 또는 순수하게 체육인으로서의 승부 근성에서 국제대회 출전을 원하는 선수도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국대 경력을 발판으로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선수도 얼마든지 있을만 하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 발탁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이 동기가 되었든 -애국심이 아니라도- 선수들에게 국대 차출은 최고의 영광이자 선수 경력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이게 일반적인 국가 대표팀과 선수단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 프로 선수가 끼어들면 어떻게 될까. 과연 프로 선수들 역시 아마 선수들과 똑같은 질량의 애국심과 자부심이 동기가 되어 죽을 힘을 다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프로 선수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소속팀에서의 좋은 성적과 우승, 그 결과로 돌아오는 많은 연봉이 지고의 선(善)이자 궁극적인 목표다. 직장인들의 목표가 직업적인 성공과 승진, 더 많은 보수인 것과 마찬가지다(국위선양이 목표인 직장인이 과연 존재할까?). 이런 프로 선수들에게 무작정 애국심만이 동기가 되어 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애국청년들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무리한 이야기다. 이게 예비군들더러 최전방에 나가 교전을 치르라고 등 떠미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런데도 국제대회 때마다 대표팀 합류를 사양하는 프로 선수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일부 언론과 팬들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은 참 애국자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야구위원회도 이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다. 그래서 맨입으로 프로 선수들을 차출할 수는 없으니까 꺼내든 것이 '메달 획득시 병역면제'라는 당근이다. 국제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해서 '국위 선양'을 했을 때는 병역을 한달여의 군사훈련으로 대체한다는 조건 말이다. 병역 의무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국위 선양'과 '병역 면제'는 언뜻 보면 서로 상충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이 조항에 별다른 반감이 없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매우 불합리하고 형평성 차원에서 볼 때 문제가 많은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병역 면제라는 당근은 프로야구 선수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거래가 아닐 수 없다. 한창 선수로 맹활약할 나이인 20대에 2년 가량 군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선수 생활 종료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구 대표팀은 어렵지 않게 프로 선수들을 '자발적으로' 국가대표로 끌어들일 수 있었고, 또 WBC에서 보듯 이런 동기 부여가 일정한 성과를 거뒀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당근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건 '면제 대상'인 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힐만한 '최고 기량'의 선수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조만간 병역을 치러야 할 젊은 선수와 같은 포지션에 국내 최고 기량의 '군면제' 선수가 있을 때,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할까? 메달을 위해 최고 기량에 초점을 맞춰 선수를 뽑자니 대표팀에 병역면제 대상인 선수가 몇 명 되지 않는 상황이 생기고(이미 면제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과연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기량은 좀 떨어져도 면제 대상인 선수 위주로 뽑자니 대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그래서 정작 메달까지 놓치고 마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건 굉장한 딜레마다. 다른 대표팀은 그냥 기량만 보고 선수를 뽑으면 된다지만, 야구 국대는 '최고 선수'를 가급적 '면제 대상' 중에서 뽑아야 한다는 이중의 고충을 겪는다.
게다가 병역 면제라는 당근은 선수들과 소속 구단의 이해관계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주력 선수의 군입대는 선수 본인에게나 소속 팀에게나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야구팬들 역시도 불합리한 면제 혜택에 대해 문제삼기 보다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 선수가 군을 면제받아 하루라도 더 프로에서 활약하는 쪽을 원한다. 이러다보니 야구 국가대표 선발은 8개 구단 전체와 선수들, 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권 다툼의 장'이 되고 말았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보기 흉한 광경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대표팀 감독이 전임감독이 아닌 프로팀 감독이 맡는 방식이다보니, 자연히 소속팀 선수에 대한 특혜 시비를 비롯해 선수 선발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내가 김경문이 아니라 다른 감독이 맡았어도 똑같은 -아니 이보다 더한- 논란이 생겼을 거라고 장담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애초부터 프로가 나갈 이유가 없는 국가대표팀에, 국가대표라는 대의와는 동떨어진 '병역면제' 당근에, 대표팀 운영이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힘든 시스템으로 되어있는데 신(神)이 아니고서야 완벽한 선수 선발을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문제는 김경문 감독에게 있는게 아니다. 정말 논란의 핵심이자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1) 전임감독제와 상비군 제도 없이 프로팀 감독과 선수들에게 '시즌 중에' 밥벌이를 팽개치고 국가를 위해 뛸 것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대표팀 운영 방식이고 (2) 병역 면제라는 민감한 특혜를 국가대표 출전의 목적이자 야구계 이권 다툼의 대상으로 만든 점 (3) 프로야구 선수와 메이저리거를 총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장땡'이라는 식의 성적 지상주의와 국가주의다. 이런 문제들이 계속 지속되는 한 앞으로 어느 누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더라도, 어떤 선수가 대표팀에 선발되더라도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선 전임감독제와 상비군 운영은 당장 이번 올림픽 이후부터라도 실행이 가능한 해결책이다. 8개 구단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인사를 공모를 거쳐 감독으로 선임하고 계약기간을 보장해 준 뒤, 투명하고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대표팀을 선발한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야구가 세계화되어 가면서 점차 국제 경기가 늘어나는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시급한 문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모든 다툼과 논란의 근원인 '병역면제'라는 당근을 대표팀의 조건에서 없애는 일이다(프로야구 스타들의 병역에 대한 '다른 해결책'은 야구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야구 선수를 총동원해서라도 메달만 따내면 그만이라는 식의 '승리-지상적-국가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체육인들을 위한 잔치에 '다른 목적'을 가진 대표팀을 투입해서 따내는 승리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건 야구계 고위 인사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야구팬들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부연. 2년전 프로 선수들로 짜여진 한국 야구 대표팀은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짜여진 일본 대표팀에 패배의 쓴맛을 본 적이 있다. 야구계는 이 때의 참사로부터 아직도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미디어다음 해외야구에 기고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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