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가 현재 한국프로야구 최고 강팀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한 야구기자는 " SK가 뛰어야 할 리그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야구 " 라고 했다는데 나 역시 그에 동의한다. 심하게 말해 요즘 프로야구는 7개 고만고만한 팀이 리그를 이루고 있고 SK만 혼자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SK는 강하다. 투수, 수비, 타격, 주루, 코치진, 프런트 지원까지. 어느 하나 약점이 없다. 팀의 모든 요소가 오메가 시계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게 지금의 SK다. 그러니 앞으로 SK가 8~90년대 해태에 버금가는 새로운 왕조를 열어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지금의 SK를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 SK는 야구팬들 사이에 '공공의 적' 비슷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SK 팬들이 생각하듯 최강팀에 대한 다른 구단 팬들의 질투라고 봐야 할까. 물론 그런 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해태나 현대 등 시대를 호령한 강팀에게는 언제나 타구단의 집중 견제가 뒤따랐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김성근 감독 개인에 대한 야구계의 뿌리깊은 편견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역시 일리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SK에 대한 비난의 상당수는 김성근 야구에 대한 오해나 그의 출신지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이 포함되어 있는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SK를 비난할 때 이런 인종차별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자들을 혐오한다. 오히려 그런 여건을 뚫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김 감독의 노력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이 전부일까? 과연 SK가 최강팀이고 1위기 때문에 모든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SK에 대한 반감은 단순히 질시나 견제 차원을 넘어 광범위한 '혐오'나 격렬한 분노에 가까운 형태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는 한번 다음 검색에서 '윤길현'이나 'SK 와이번스'를 키워드로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윤길현 덕분에 대통령이 욕을 덜 먹는다는 얘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다. SK와 관련된 부정적인 사건이 하나 터지면, 이전에 발생했던 온갖 사건과 편견이 한데 뭉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이 거듭되고 있다. 다른 구단의 경우에는 선수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 치부될 만한 사건도 SK와 관련되면 선수단과 감독까지 팀 전체가 도매금으로 평가 절하를 당한다. 이런게 그냥 1위팀에 대한 질투일 리는 없다.
SK팬들은 항변한다. " 억울하다. SK에 대한 논란 중 상당수는 오해나 악의적인 왜곡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SK 선수들은 다른 팀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죄밖에 없다. 야구 잘하는게 죄란 말인가? " 수긍할 만한 이야기다. 당신이 좋아하던 싫어하던, SK 선수들은 정말로 최선을 다해 야구한다. 그들은 스코어가 몇대 몇이건 간에 한시도 긴장을 늦추거나 고삐를 푸는 법이 없다. 지고 있어도, 경기가 다 끝나가도 대충대충 하지 않는다. 적당히 봐주거나 시간 죽이기 식으로 플레이하는 법도 없다. 퇴근 본능 같은건 애초에 키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죽기살기다. 그래서 SK의 플레이를 보노라면 마치... 예전의 쌍방울 선수들의 투지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최강팀의 야구에서 역사적 약체팀의 야구가 떠오르는 역설. 바로 그게 문제다.
최약체처럼 행동하는 최강팀
김성근 감독은 언제나 야구계에서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존재였다. 야구계의 구악(久惡)들이 똘똘 뭉쳐 그를 따돌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가 가는 팀의 프런트는 지원군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그가 거느린 선수들은 8개 구단 가운데서도 가장 야구를 못하는, 다른 구단에서라면 '버리면 그만'일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을 내고 시합다운 시합을 하려면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연습하고 목숨을 걸고 플레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과거 쌍방울의 기적과 2002년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다른 팀의 두배 세배를 훈련하는 것은 기본이고, 볼 하나와 아웃카운트 하나도 낭비하는 법이 없는 세밀한 야구. 데이터를 쥐잡듯이 분석해서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야구. 삼진으로 경기가 끝났지만 상대 포수가 낫아웃된 공을 관중석에 던지는 실수를 놓치지 않는 -그래서 결국 역전승을 따내는- 무서운 야구. 그게 김성근과 그의 팀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독기를, 헌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런데 지금 SK는 예전 김성근이 맡은 쌍방울이나 2002년 LG와는 차원이 다른 팀이다. SK는 역대 김성근이 맡은 팀 가운데 가장 기본 전력이 탄탄하게 갖춰진 팀이었다(이는 일정부분 전임 조범현 감독의 공이기도 하다). 구단 재정이나 프런트의 일하는 능력도 예전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물론 이런 점이 SK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김성근의 지도력을 폄하하는 원인이 되선 안 되겠지만, SK가 강팀의 여건을 두루 갖춘 팀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지난해 김성근 감독이 아닌 다른 지도자가 왔대도 SK가 충분히 4강권에는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팀을 맡았기에 김성근의 지휘봉이 조금은 무디게 변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김성근은 더 지독해지고, 집요해지고, 완벽주의자가 되어 돌아왔다. 올시즌 SK의 7~9회 경기후반 팀타율은 .274이고 OPS는 무려 .719에 달한다. 마무리투수와 좋은 불펜 투수들이 떼지어 나오는 경기 후반에도 전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또 5점차 이상 나는 경기에서의 각종 공격 지표도 SK는 독보적이다. SK 선수들은 항상 사소한 실수나 나태한 플레이 하나로도 바로 감독 눈밖에 날 수 있다는 치열한 경쟁 의식에 시달린다. 김광현이나 박재홍처럼 스타 플레이어도 예외가 없다. 가장 재능있고 뛰어난 선수가 가장 못나고 입지가 불안정한 선수처럼 경기에 임한다. 바로 여기에서 SK의 무시무시한 힘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SK가 야구팬들 사이에 비호감이 된 이유를 보게 된다.
SK와 상대하는 팀들은 단순히 한 경기를 내줬다는 아쉬움만 느끼는게 아니다. 모든 팀들은 SK에게는 그냥 지는게 아니라 '완패'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이 속속들이 노출당했다는 수치심과, 철저하게 패배했다는 데서 오는 울분과, 다 이겨놓고도 끝까지 자신들을 괴롭히는 상대에 대한 복수심이 뒤섞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걸 보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팬들은 '같은 민족끼리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SK의 경기를 보며 떠올린다. 저렇게 강한 팀이, 저렇게 잘하는 팀이, 독주하는 1위 팀이 꼭 저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같은 민족끼리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닌가. 이게 SK 경기를 보는 야구팬의 솔직한 심정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그런 부분이다. SK는 대체 왜 최강팀이 상대편의 사소한 실수 하나를 갖고 물고늘어져서 이기려고 애를 쓰는가, 왜 2위와 9게임차로 앞서가는 팀이 무관심 도루 하나 갖고 시비일까, 상대편 데드볼 맞히고 사과한 선수를 2군 보내야 할 정도로 각박하게 야구해야 할 이유가 1위팀에게도 있는 걸까... 만일 쌍방울이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이겨야 하니까'라고 이해를 했을 게다. 하지만 지금 SK는 쌍방울도 태평양도 아닌, 최고의 강팀이다. 국내에는 적수가 없는 팀이다. 그걸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김성근과, SK 선수들과, 인천 팬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니, 그보다도 진정한 강팀은 어떻게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너무도 많이 이야기된 사건이지만 15일 SK-KIA전에서 벌어진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SK 투수를 '빈볼은 나쁜 것'이라거나 '연장자 존중'과 같은 관점에서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1위팀이 하위팀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5회까지 스코어 9-0이면 상대로서는 거의 경기를 포기할 법한 상황이다. 상위권으로 올라갈만 하다가 다시 내려앉는 중이었기 때문에 KIA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1패의 아쉬움을 넘어서는 것이었을 게다. 그 상황에서 상대의 도루 하나가 그렇게 시비를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일까.
8회에 벌어진 상황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또다시 무관심 도루를 했다고 해서, 굳이 대승을 앞둔 팀이 빈볼로서 상대를 '응징'하려들 필요가 있을까.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게 원칙이라지만, 굳이 대패하고 있는 팀을 상대로 도발까지 해가며 짓밟을 필요가 있을까. 삼진으로 잡고 들어가면서 그렇게까지 상대를 조롱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사고를 친 선수를 다음 회에 다시 마운드에 올릴 필요가 있을까. 모든게 1위팀-최강팀 선수의 행동이라기엔 너무도 유치하고, 치졸하고, 좀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SK 선수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하위의 루징 팀인 것처럼, 쌍방울이나 삼미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2년 연속 우승을 바라보는 최강팀 다운 품격이나 여유는 어디에서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강자의 품격과 여유가 필요하다
아마 SK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SK가 강팀으로 존재하는 이상 이건 피할 수 없는, 치토스 속의 따조와 요플레 뚜껑의 잔여물처럼 계속해서 따라다닐 운명이다. 야구팬들의 와이번스에 대한 인식이 하루아침에 호전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러다보면 SK가 팬들의 부당한(또는 과도한) 비난을 받는 일도 종종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번 윤길현 건처럼 명백한 잘못으로 집중포화를 당하는 경우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어느쪽이든 SK라는 구단이 존재하고 야구가 계속되는한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없다. SK가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SK에게 자신들이 강팀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아마도 그들은 잘 알고 있다고 응수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1위'란 단어가 쓰인 순위표를 들여다보고 기뻐하란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의 양키스나 요미우리 같은 팀이 지닌 품위와 강자다운 여유로움, 겸손을 배양하라는 주문이다. 양키스의 경우 MLB의 '공공의 적', '악의 제국'이란 말을 듣지만 그들의 역사와 전통, 실력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손치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양키스 야구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했다며 비난했다.
양키스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팀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기에 다른 이들이 질투에 찬 시선을 보내더라도, 집중적인 견제를 받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여유가 넘친다. 양키스가 공적으로 불리면서도 많은 야구팬들의 존중을 받는 이유다. 나 역시 뉴욕의 다른 팀을 응원하는 관계로 양키스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진짜 최강의 명문 구단이란 바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SK 역시 이제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준비해야 한다. 작년까지 SK 야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승리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신흥 강팀다운 자부심과 여유를 찾는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매사를 다른 팀들과 똑같이 봐주길 원해서는 곤란하다. 다소 억울하다 싶은 상황도, 또는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업계 관행이라고 해도 강자다운 여유로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약자'나 '피해자'라는 식의 인식을 벗지 않는한, SK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15일의 상황도 SK가 무관심 도루를 애초에 그냥 넘어갔다면, 빈볼성 공 따위는 던지지 않았다면, 던진 뒤에 도발적인 제스처를 삼갔다면, 삼진 뒤에 묵묵히 덕아웃으로 들어갔다면(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상대가 무작정 빈볼을 던지거나 심판이 노골적인 오심을 하거나 팬들이 감독의 국적을 두고 욕설하는 것을 다 참아 넘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합당하게 대응하되, 그외의 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보다 여유로운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성근 감독 역시 예전 약체팀을 맡던 시절의 스타일을 일정부분 버릴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윤길현의 그 태도는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말 것을 가르치는, 그라운드에서는 인간적인 정이나 지위고하는 필요치 않다는 김성근 감독의 지도방식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게 약자의 입장일 경우에는 필요한 자세일 수도 있다. 팀이 최하위인데 인간적인 동정 같은게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SK 같은 강자가 그렇게까지 해가며 상대를 짓밟는 것은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약체팀이 이기기 위해 필요로 했던 부분이 강팀에게는 오히려 해가 되는 요소일 수 있음을 김감독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건 그의 야구에 대한 나의 존경심과는 별개의 문제다.
서두에 언급했듯 SK는 강팀이다.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한 계속 그럴 것이다. 또한 그들의 구단 운영이나 팬서비스, 선수들의 기본기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 등은 다른 구단들도 배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 몇년 사이 한국야구에서는 SK의 영향으로 팬서비스나 구장 시설, 전력분석팀 등에 있어 여러가지 발전이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구단들은 대개 강팀의 전술이나 팀 운영 방식을 뒤따르게 마련이다. SK가 한국야구에 앞으로 롤 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SK는 진정한 강팀다운, 긍정적인 롤 모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야구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성적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태도나 스포츠맨쉽 등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SK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깨닫는 바가 있기를,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존중받는 강팀으로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미디어다음 해외야구에 기고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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