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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를 치르고 귀가한 지도 12시간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지를 기록으로 남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귀가 후 간신히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도 나가서 간단히 먹고 돌아왔지만 막상 모니터와 키보드(노트북)를 앞에 두고 앉으니 온갖 피로도와 부끄러움, 힘겨움이 배로 몰려오니 조리를 갖춘 무엇을 내는 것보다 그냥 쓰러져 버리자는 생각이 더 강했다는 것이겠죠. 어제 경기별 배정인원의 이름조차 출장일지수첩에 기재를 하지 않은 상태이니 말 다했죠...;;;
  그러한 점은 열 시간 가량 이부자리에서 나오지 않으며 개기다가 - 애틀란타와 워싱턴의 개막경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는 - 일어나서 출근 채비를 하고 나온 뒤 근무시간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어제 하루가 그다지 만족스러운 하루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자기 자신의 있는 것 없는 것을 모두 내보이게 되는(특히 이곳처럼 노출도가 만만찮은 곳이라면 더욱) 블로그에 과연 힘들고 어두운 이야기를 끄적이는 것이 괜찮은 일인지 하는 심정도 들 정도니 말입니다.

  일요일 새벽부터 빗소리가 잦아지면서 "오늘은 경기를 진행할 수 있겠군"하고 되뇌이며 부족한 잠을 자 두었습니다. 바로 전주에 밤을 새우며 기다리다가 결국 [오전 경기 취소, 오후 경기는 대기 상태]라는 메시지를 받고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을 맛보았기에 그러한 우를 다시 범하고 싶진 않았기에 말입니다. 그렇지만 간신히 눈을 붙이고 숙면을 취한 시간은 불과 2시간. 오전 경기들은 어찌어찌 치르겠지만 오후 경기에서 뜸이 나면 뻗어버리기 딱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죠.
  일산 *****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40여 분 정도 걸려 학교 앞에 도착한 뒤 **역 앞에 가서 캔커피를 여섯 개 사고 다시 돌아온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었습니다. 타이밍 맞게 다른 심판분들도 도착하셨죠.
  운동장 상황은 썩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홈플레이트 쪽과 각 베이스가 놓일 자리에는 물이 고여 있거나 물을 걷어냈음에도 진흙 기운이 미끌미끌하다 싶은 정도였고 벤치로 쓰이는 자리로 움직이려면 발이 푹푹 들어갈 정도였죠. 그나마 "경기는 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시작 시간을 5분 남짓 넘겨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날 같이 배정된 4명(저를 포함한)의 심판원 중 한 분만 지난 해 처음 시작하신 분이고, 한 분은 나이는 저와 동갑이고 기수는 낮지만 그래도 그간 큰 대회들을 저보다 더 많이 출장해 오신 베테랑, 또 한 분은 저보다도 윗 기수이며 역시 큰 대회에 단골로 나가시며 [FM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심판부에서 가장 믿을맨으로 인정받는 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예정된 경기 수는 다섯 경기이기에 한 경기씩 번갈아가며 들어가면 되는 날로 여유가 있었기에 무난한 하루가 될 수 있었죠. 다만 중간에 휴식이 있을 경우 눈을 좀 붙였어야 하는데 오래간만에 만난 고참심판원들과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휴식이 부족해진 것에 이것저것 악재가 몸에 쌓여서 마지막 경기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할 말실수가 나온 것이 큰 티였죠. 충분히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멘트를 썼어야 했는데 피로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나머지 한창 플레이가 안 풀려 속이 타들어가는 이에게 속상할 만한 멘트가 나와 버렸으니 말입니다.

  첫 경기에 루심으로 들어가서는 투수 보크 - 2루주자에 대한 픽오프를 들어가야 하는데 오른손투수의 자유발이 3루 쪽으로 내디뎌지는 바람에 선언 - 며 3루에서의 주루방해 - 2루주자 3루 도루시 포수의 송구는 악송구, 그 직후 3루수와 주자가 부딪히는 바람에 선언됨 - 를 이른바 "칼 타이밍"으로 콜업을 할 정도로 플레이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잡아냈는데 세번째 경기에서 구심으로 들어가서 파울볼에 팔 한 방 마스크 한 방을 맞으면서 뭔가 가라앉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더군요. 제 4경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감겨지는 눈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더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한쪽 팀의 포수로 나온 선수가 주전이 아니었는지 블로킹이나 미트질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원바운드 공에 마스크를 맞는 등 불안함을 잔뜩 안아야 했다죠. 파울공에 허벅지도 한 방 맞으니 도대체 포수 뒤에서 마음 편하게 판정에만 집중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더라는... 결국 무사 1, 2루에서 투수와 유격수, 2루수 사이의 공간으로 떠오른 내야 플라이볼을 루심을 본 선배심판은 "내야수가 평범하게 포구할 수 있는 공이 아니다"고 봐서 인필드 플라이 선언을 하지 않았는데 구심을 본 제가 인필드 플라이 배터 아웃 콜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종료된 뒤에 그분께 공격측에게 손해를 준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뭐 판단의 문제였지만 되짚어 보면 충분히 그렇게 봐도 무방한 건이었죠. 더구나 아무도 캐치를 못하는 통에 주자들은 하프웨이(자기 베이스와 다음 베이스 사이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를 하던 중 스타트를 끊고 유격수가 공을 잡고 1루에 송구했는데 악송구가 되는 통에 2루주자는 득점하고 무사 주자 1, 3루가 되었을 것이 인필드 플라이 콜을 한 터라 원 아웃에 주자 3루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예전에 겪었던 인필드 플라이 규정과 적용에 얽힌 숱한 뒷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첫 번째 경기를 끝내고 두 번째 경기를 들어간 다른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간 서로 겪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지난 해 처음으로 내부 심판조직을 팀제로 시험 운영하면서 느낀 점이라던지, 2년차를 맞이한 MBC ESPN 연예인 리그에서 전담 팀으로 들어가신 노장 분들이 겪은 에피소드들(대체로 오프 더 레코드를 취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던... 특히 2007 올스타전 때 뒤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나왔다는), 제가 지난 해 서울시 연합회 대회 결승 현장에서 겪어 분하게 여긴 생각, 올해 드디어 운영될 예정인 전국심판제(전국대회가 벌어질 경우 개최지역에서 연수를 받은 심판 수 명과 서울에서 내려가는 전국연합회 심판 수 명이 나누어 맡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야기며 기본적인 심판으로서의 소양을 가진 이들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데 대한 공감대 형성에 올해 벌어질 대회며 일부 리그에서 사용되어야 할 구장에 대한 확보 문제들까지... 정말 날 하루 이틀 잡고 서로 머리맞대고 열나게 떠들어 대야 할 이야기를 대기심으로 나와 있는 짧은 시간 동안 교환하려니 안 그래도 피곤한 몸과 두뇌에 과부하가 걸려 버린 것 아니었을까 하는 뒷생각이었습니다. 더구나 근 몇 년 동안 심판부의 연내 두 달에 한 번씩의 정기모임에 참석한 일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까닭에 조직 내부의 논의에 참여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던 처지이다 보니 한 번도 하나하나의 이야기거리들이 참 여운이 많이 남는 것이었죠. 동대문구장 철거에 목동의 개보수 이후의 모습도 그렇고 말이죠...

  5월 이후... 어찌 될지 현재로서는 짐작이 안되네요. 하루하루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다른 쪽 일의 강도가 강해서 서로 보조를 맞추기는 더욱 그런데다 토요일-일요일-월요일로 이어지는 피로도의 가중이 주중 일에 미치는 정도가 꽤 크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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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otz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