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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부터 다섯 경기... 평소대로 진행되었다면 이 시간(저녁 8시를 향해 가는 현재 시간)에는 일정을 종료하고 대중교통을 이용, 이제야 막 방에 돌아와 개인정비하고 피곤한 몸을 추스리거나 같이 배정된 심판부 사람들끼리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의 경기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헤어지거나 하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방에 돌아와서 샤워하고 세탁물 정리하고 밥먹고 난 시간입니다.

  밤을 샌 뒤 새벽 전철을 타고 일산의 **역까지 이동한 후 다른 심판 분의 차를 타고 구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7시 25분... 그전에 자주 나갔던 학교 운동장의 좌우 거리가 74, 86m 정도였던 데 비해(뭐 학교 담장 위에 연결한 12m 이상의 망이 그린 몬스터 역할을 해 주었지만), 오늘 찾아간 구장은 좌우 거리가 95, 96m를 넘어서는 정규의 구장이었다죠(물론 대학교 야구부의 연습용 구장이긴 했지만)... 그동안 찾았던 다른 구장들에 비해 볼 인플레이 상태로 2루타 이상 전개되는 장타가 자주 나왔다는... 모 경기에선 보기 드물게 2루를 지나 3루로 뛰던 타자주자를 멋진 중계 플레이로 아웃시키는 파인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네요.
  예전(이라고 해도 전 재작년에 찾아갔다죠)에 찾아갔을 때는 그냥 그물망만 설치되어 있어 홈런이냐 인플레이냐를 판정내리기 난감해 했는데 그물 하단부에 녹색 천으로 펜스처럼 표현함으로써 보다 용이하게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는... 하지만 100m줄자로 라인을 표시하는데 제한 거리를 거의 사용함으로 인해 되감는데 엄청난 팔힘을 소요하기도 했다죠.

  오늘의 팀장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 선배 심판 분이 댁에서 예상보다 늦게 도착 - 통상 경기 시작 30분 전 도착을 원칙으로 하는데 경기 시작 전 10분이 되어서야 오셨다는 - 함으로 인해 (제가 미리 짜서 추인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도착 후 경기별 분담이 다소 요상하게 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총 다섯 경기 중에 한 경기가 1심제이고 나머지 네 경기가 2심제인데 투입된 인원은 4명... 다시 말해 한 사람은 세 경기를 보고 다른 세 사람은 두 경기씩만 소화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오는 날이었죠. 그런데 경기에 들어가는 인원 배치가 다소 급하게 이루어지면서 저와 다른 한 분은 1, 3경기만 관장하고 마지막 두 경기는 대기심으로 보내야 하는 다소 느슨한 배치가 이루어졌다는... 보통 이런 경우에 투입된 심판들 간에 선후배(년차의 다름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의 년차가 크면 대체로 년차가 적은 사람들은 끝까지 남아서 투입되지 않는 경기도 관전을 하고 선배 심판은 후배 심판 분들의 경험치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입니다만, 사실 그러한 모습들은 해가 가면 갈수록 시나브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죠. 그래서 제가 그 전 2주 동안 계속 배정을 나가 있던 동안 상층부에서 그러한 행동들로 인해 내부 단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 그런 점을 시정하기 위해 심판부 사람들이 구장에 나가서 자신이 치루어야 할 경기 수만 채우고 그날의 모든 일정 종료를 기다리지 않고 귀가하거나 다른 일을 보려고 떠나는 일을 금하도록 한다고 결정을 내린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오늘 제가 나간 곳은 모두 팀장 레벨들만 모인 곳이었던 데다 대기심으로 쉴 만한 공간도 마땅찮은 형편, 거기에 저만 그렇게 일정이 짜였다면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싫어해서 그냥 있었을 텐데 또 한 분이 저보다 나이가 한참 위이신 분이다 보니 팀장 역할을 한 선배 심판분이 특별 예우 차원에서 세번째 경기가 종료된 뒤 저와 그분을 전철역까지 차로 배웅해 주셨다는. 그래서 방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 쯤이었다는...

  경기들 자체는 매우 힘겨웠습니다(전 세번째 경기까지만 하고 돌아왔지만... 또 언제는 힘겹지 않은 경기들이 있었겠냐만).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나갔는데 비 예보가 있었다더군요. 그런데 구장에 도착해서 맞이한 날씨의 변화는 익히 알고 계실... 눈이었다는... 아침 첫 경기 시작 전부터 눈가를 적시기 시작한 눈발(처음엔 동료 심판원이 경기 시작 전에 피운 담뱃재인 줄 알고 기겁을 했다죠...)이 경기 중간 중간에 함박눈이 되면서 야수들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 정상적인 날씨 환경 하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수비 장면들이 속출했다죠. 심지어는 쉬운 외야 플라이 타구가 떴는데 해당 외야수는 그 타구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어디에 있는지 찾지를 못하거나 명색이 선수 출신 유격수가 내야 땅볼의 바운드를 맞추지 못해 뒤로 넘기는 일도 나왔다는... 경기를 진행하면서 내심 '이 정도면 중단시켰다가 재개하는 것이 나은 것 아닐까?'를 여러 차례 고민했다죠. 그래도 한 이닝의 초에 눈이 쏟아지다 말이 되면 눈발이 그치고, 겨우내 얼어 있던 그라운드는 눈이 그렇게 와서 땅을 적셔주는데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뛰는 데엔 지장은 주지 않더군요. 시합구만 보충이 되면 경기는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행을 했는데 애꿎은 자책점 손해를 본 투수들에겐 유감이라는...
  더해서 눈발에 엉겨진 그라운드의 흙이 심판화 바닥의 고무 징 사이에 끼어 운신이 어려워지는 괴로움도 있었죠. 스텝을 디디는데 발바닥 한가운데 부분이 가장자리보다 두터워져서 균형을 유지하고 서 있기도 쉽진 않았다죠. 이닝 교대 때마다 근처에 있던 부러진 방망이의 조각을 가지고 바닥에 엉겨붙은 흙을 털어내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었네요. 뭐 선수들의 쇠징 스파이크에 끼인 흙도 정상적인 플레이에 어려움을 주는데 있어서는 만만치 않았지만.
  날이 날이다 보니 심판을 보면서도, 또 바깥에 나와 대기심으로 있으면서도 경기에 집중하기보다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려는데 더 신경이 모여졌다죠. 더구나 지난 금요일 허리가 삐끗한 여파로 추운 날씨에 부담을 더욱 느꼈기에... 그래도 경기 중에 눈에 띄었던 장면들이 [주자 1, 3루에서 투수의 3루 견제 위투 동작 - 정상적으로 자세를 취하면 던지지 않아도 됨 - 에 1루주자가 2루로 뛰다가 투수의 2루 송구에 걸려 아웃된 모습]과 주자가 1루에 있는데 스트라이크 낫 아웃이 성립되는 경우와 성립되지 않는 경우를 모르고 주자와 타자, 수비진들이 허둥지둥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세트 포지션의 "스트레치 후 한 번 정지, 목 아래는 움직이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이닝 내내 모은 두 손을 흔들거리면서 투구하는 투수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을 경기 도중에 지적해야 하는지 이닝은 종료한 다음에 알려주어야 하는지를 내야에서 웃음을 참아가면서 고민하던 저의 모습이었다는...

  이날 같이 배정된 분들이 전부 최소 8년 이상의 베테랑들만 모여 있어서였는지 심판들 상호 간의 포메이션이나 재정이 엇갈릴 우려가 있을 법한 상황들이 거의 나오지 않아 그런 측면에서는 밋밋한 하루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뭐 어찌 보면 고참급들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던 데다(지난 해 MBC ESPN 연예인 리그를 2년째 맡으면서 그곳을 전담했던 분들의 고충도 나름 들었다죠... 목동구장이 "없어진다"는 멘트를 남긴 나이많으신 윗분의 말씀도 있었고... 제가 가진 다른 생각을 말씀드릴까 하다 그냥 참았다죠), 내일 드디어 새로운 일터를 찾아 나가는 입장에선 힘 덜 쓰고 바깥에서 시간 덜 소비하고 몸을 추스릴 수 있는 여지를 얻어냈다는데 의의를 찾아야 할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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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otzky